지난 영화제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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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준
제1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 오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이제 폐막식만을 남겨두고 있는데요, 오늘 폐막식을 앞두고 두 번의 포럼 중 국내포럼을 지금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자리는 영화제 기간에 있었던 세 번의 섹션 ‘충무로 리와인드’ 영화 상영 및 공연 작업에 참여하셨던 분들을 모시고 작업의 뒷이야기도 들어보고, 여러분이 궁금했던 점에 대해서도 풀어보는 자리인데요, 부담 없이 편안하게 진행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 영화제의 예술감독인 김홍준이고요, 지금 여기 섹션 ‘충무로 리와인드’ 공연을 보신 분들도 있고, 안 보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 오늘 포럼의 순서는 오늘 포럼의 순서는 정리하고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각 작품의 2~3분 정도의 예고편 형식의 영상을 한 편씩 보고, 그에 대한 개략적인 해설을 들은 뒤에 서로 궁금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청춘의 십자로> 화면 보시겠습니다. 모은영 프로그래머님부터 모시겠습니다. <청춘의 십자로> 영화의 발견부터 공연 기획까지 간단하게 좀 요약해서 이야기해주시죠.
모은영
먼저 화질이 좋지 못한 점 양해 부탁드리고요, 아무래도 이 작품이 1934년 작이라 화질이 별로 좋지 않아요. 방금 보신 클립은 2013년에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 및 공연을 했을 때 찍은 것이고요, 이 작품의 처음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2007년에 어떤 분께서 거의 뭐라고 해야 할까요, 거짓말처럼 혹은 기적처럼 필름을 들고 오셨어요.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필름 캔을 들고 오셔서 ‘어머님께서 굉장히 귀한 필름이니까 간직해라, 근데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다, 이게 어떤 영화인지 알아봐 달라’고 했다며 필름을 가져오시면서 시작이 됐는데요, 필름 캔에 그때 씌어있던 글씨는 ‘아리랑’이라는 제목이었습니다. <아리랑>은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한국영화사에서 꼭 찾아야 할 영화로 꼽히는 첫 번째 작품인데요, 한국영상자료원이 그 ‘아리랑’이라는 글씨 하나 때문에 발칵 뒤집히면서 드디어 <아리랑>을 이렇게 찾는구나, 라고 했었죠.

근데 이 필름이 완전히 원본 필름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어떤 이미지인지 알 수 없는 필름 상태였어요. 그리고 이 필름은 질산염 필름이었습니다. 영화 <시네마 천국> 보시면 온도가 어느 정도 올라가면 필름이 타 버리는 장면이 기억나시죠? 알프레도 아저씨가 필름을 돌리다가 필름이 타면서 눈이 멀게 됐었던 장면이요. 한국영상자료원에 도착했던 필름이 그런 옛날 필름이었는데요, 그런 상태였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현상이 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필름을 일본으로 보낸 뒤에 다시 필름을 가져와서 현상본이 생겼어요. 그리고 영상자료원에 있는 1930년대의 영화 스틸 이미지들을 하나하나 대조해가면서 이 필름에 담긴 이미지들을 찾았고요,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알게 된 게, 이 필름이 1934년 안종화 감독님의 <청춘의 십자로>라는 작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영화사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데요, 아시겠지만 한국영화는 1935년부터 유성 시대로 전환이 되었기 때문에 1934년 작품은 무성영화 시대에 만들어졌었던 무성영화고, 현재 남아있는 유일한 무성 시대 영화거든요. <청춘의 십자로>는 당시 개봉했을 때 베스트 10에 들 정도로 굉장히 유명했던 작품인데요, 그런 영화사적인 의미를 별개로 하고, 이 오래된 영화를 지금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하면 계속해서 친근하게 보여줄까, 하는 것이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의 당면 과제였거든요. 그렇게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보여줄까, 하는 고민이 시작됐고요, 이 영화가 처음에, 1930년대에 어떻게 관객들과 만나게 되었는가, 하는 관람형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1930년대엔 잘 아시겠지만, 한국과 동아시아에서 특별한 관람형식이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변사라고 하는 형식이었고요, 변사가 영화를 해설해주는 거였죠. 변사의 역할에 관한 부분은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이야기를 더 하도록 하겠고요, 그러면서 그 변사의 형식을 재연해보자 하는 처음 아이디어를 가지고서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의 신문기사를 보기 시작했고요,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전체 연출을 어느 분이 하시는 게 좋을까, 하는 고민이었어요. 그런데 처음에 이걸 공연으로 만든다고 했을 때 많은 분이 공연이니까 공연 연출가들이 하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이게 영화고 1930년대의 영화사적인 경험을 연출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이 전체의 연출은 영화계에 계시는 영화감독님이 하시는 게 좋을 거라는 판단을 했어요. 그러면서 김태용 감독님이라는 분을 떠올렸습니다. 김태용 감독님이 영화연출뿐만 아니라 공연연출도 하셨던 경험이 있기도 하시고요, 무엇보다도 고전 영화에 관한 기본적인 애정, 모든 감독님이 다 가지고 계시겠지만, 그것이 있다는 신뢰에 기반을 두어서 감독님을 섭외하고, 감독님도 기꺼이 이 영화를 보시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희가 처음에 <청춘의 십자로>를 봤을 때는, 배우 분들이 다 처음 보는 분들이었기 때문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의 얼굴도 사실은 분간이 잘 안됐어요. 다 같은, 동일한 인물들인 것 같았고요, 이 이야기가 무엇인가에 대한 파악을 하는 데만도 거의 한 달이 걸렸어요. 보다보니까 이제 주인공들의 얼굴들이 좀 구분이 됐습니다. 그렇게 했었던 이유는 이 영화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거든요. 영화의 제목만이 남아있었고, 이 영화의 연출을 하신 안종화 감독님이 남긴 한 세줄 정도의 줄거리가 안종화 감독님이 쓰신 ‘한국영화측면비사’라는 책이 있었어요.
김홍준
자기 영화라서 쑥쓰러워서 대충 쓰신 것 같아요.
모은영
그런신 것 같아요. 근데 주인공 이름도 약간 헷갈려서 쓰셨더라고요. 그래서 저희가 주인공 이름을 영화 속의 편지 장면에서 찾았어요. 그 장면을 보고 여자 주인공 이름이 계순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안종화 감독님이 쓰신 글에는 여자 주인공 이름이 영옥이로 되어 있어요, 오래되어서 잊으셨었는지 헷갈리셨는지. 그러면서 남아 있는 당시의 신문기사도 찾고, 줄거리들을 하나하나 한 줄씩 쓰게 됐던거죠. 그래서 김태용 감독님과 작가 분들과 직접 변사를 맡게 되셨던 배우 조희봉 님과 대본을 완성을 하면서 동시에 1930년대의 변사 방식을 다시 연구를 하면서 변사들이 단순하게 대사만 읊었던 것이 아니라 굉장히 다양한 연희들을 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것을 그대로 재연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지금 현대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는 방식으로 재현하자는 식으로 하면서 이런 형식이 구성이 되었습니다.

여기에 나온 아까 보셨던 그 장면은, 어떻게 보면 형식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것 같아서 발췌를 했습니다. 변사와 4인조 밴드인 악단이 연주를 하는 것이요. 그리고 그 당시 기사들을 보면 배우들이 전체적으로 직접 들어오는 방식보다는 영화 중간 중간, 혹은 앞뒤에 나와서 공연하는 걸 주로 했어요.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마술이나 만담을 하는 게 되게 많았는데, 그 방식을 조금 현대적으로 저희가 재현을 한 것이죠.
김홍준
모은영 프로그래머님께서 아주 요약을 잘 해주셨고요, 이번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는 <청춘의 십자로>가 두 가지 버전으로, 여기 중극장 블랙에서 했던 소극장 버전, 그리고 야외버전으로 선보여졌는데, 거기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더 있다 하도록 하고요. 여담이지만 이 영화를 연출한 김태용 감독님이 <청춘의 십자로>를 연출하실 때는 <만추>를 연출하시기 전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연히 지금의 아내이신 분과 결혼하시기 전이었고요. 그 사실을 알고 <만추>를 보다 보니까 되게 재밌었던 게, <만추>에서 현빈과 탕웨이가 저 사람들을 보면서 입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이런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고 하는데, 저는 김태용 감독님께서 이 영화의 대사를 파악하려고 계속 배우들의 입을 봤다는데 그 경험을 <만추>에 쓰지 않으셨는가 추측해 보았습니다.

어쨌든 이 고전영화에 대한 복원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술적으로 훼손된 화면을 복원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관객들이 영화를 만났던 형식 자체를 복원했다는 것, 그것이 세계영화사적으로도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은 <이국정원> 영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전계수 감독님 모시겠습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연속해서 <이국정원>으로 관객들과 만나시느라고 수고해주셨는데요, <이국정원> 프로젝트를 어떻게 제안 받으셨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런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시죠.
전계수
<이국정원>은 이제 앞의 작품 <청춘의 십자로>도 마찬가지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아주 오랜 노력 끝에 어느 정도 기적적으로 발견한 영화예요. <청춘의 십자로>는 누가 가져오셨다고 하셨지만, 제가 알기로 <이국정원>은 홍콩의 쇼브라더스라는 유명 제작사의 필름아카이브인가, 거기에 있다는 것, 즉 소재를 파악하고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지속적으로 요청을 해서 소재 파악하도 하고 몇 년에 걸쳐서 요청을 해 가져왔다고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한국에 왔을 때,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이 공연을 다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사운드 필름이 다 훼손돼서 화면만 남은 상태였습니다. 화면 역시도 아주 깨끗하거나 선명하진 않았지요. 이 영화가 1958년 작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이 2016년이니까 60여년에 가까운 세월이 지난거죠. 그러면서, 이 영화 프린트라는 게 굉장히 아주 섬세한 보관이 필요한 일종의 문화재인데 워낙 작품이 많다보니까 홍콩에서 제대로 관리를 못했던 모양이예요. 그래서 거의 필름이 ‘떡’이 되어가지고, 쉽게 말씀드리자면, 화면끼리 붙어있기도 하고 그랬어요. 이 필름은 나중에 일본에서 최고의 복원기술을 가진 일본 회사에서 복원이 됐고요, 복원을 된 게 이 정도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영화가 언론시사로 상영되기도 했어요. 그런데 우리 영화임에도 자막을 통해서 내용을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함께하고 계시는 모은영 프로그래머님께서 <청춘의 십자로>를 해서 좋은 평가를 받았던 기억도 있고, 두 번째 프로젝트 성격으로 하되 또 새로운 시도를 한번 해보자, 하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청춘의 십자로>가 1930년대 무성영화 시절에 있던 변사의 형식을 통해 영화를 만났다면, 1950년대엔 거의 다 후시녹음을 했었거든요. 동시녹음 기술이 들어오기 전에 영화를 다 찍고 나서 후반작업으로 소리를 만드는 게 그 당시 영화 만드는 방식이었다는 것에 착안을 해서 어차피 사운드가 없는데 우리가 후반작업을 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재현하면 굉장히 색다른 볼거리가 되겠다는 그런 생각으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국정원>은 대본이 있긴 있어요, 대사의 70~80 퍼센트가 담긴 녹음대본이요. 그래서 저희는 줄거리 파악하는 데는 아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제 이 영화를 공연화하면서 이를테면 너무나 지나치게, 뭐라고 해야되나 너무 ‘느끼하다’거나 너무 ‘올드’하다거나 하는 대사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있을 것 같아서 각색을 대대적으로 하면서 전체의 50퍼센트 정도가 각색이 된 것 같습니다.

이 영화의 사운드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는 배우의 대사, 음악, 그리고 효과음향입니다. 이 세 가지 파트를 나눠서 각각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일단 대사는 제가 각색을 해서 배우들과 함께 한 2~3개월 가량 연습을 했죠. 배우들은 모두 현직 뮤지컬 혹은 영화 배우입니다. 처음에는 이걸 성우가 해야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그냥 소리만 전달하는 게 아니라 관객들이 보는 사람들의 존재감 자체도 중요하고, 퍼포먼스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에 발성은 물론이고 몸 연기가 되는 배우들 중심으로 라인업을 꾸렸고, 거기에 노래까지 되는 배우들로 캐스팅을 했습니다.

노래 같은 경우에는 대본에 보면 ‘내 마음의 태양’이라는 노래를 여주인공인 방음이 부른다는 지문이 나와요. 딱 한 줄 달랑 있어요. 가사도 없고 더더군다나 사운드가 없기 때문에 이 곡이 어떤 곡이었는지 전혀 짐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제목만 보고 영화의 줄거리를 충분히 이해한 상태에서 이런 식의 감성과 이런 가사를 보여주면 어울리겠다 싶어서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었습니다. 테마곡 ‘내 마음의 태양’을 만들다 보니까 영화에선 여주인공이 노래를 한 곡만 부르지만, 이게 일정한 음악적인 형식과 리듬도 갖고 있고 또 주인공들이 한명은 작곡가 한명은 가수이기 때문에 어떤 음악적인 요소들을 많이 집어넣으면 관객들이 재밌게 즐기실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이 노래를 독창버전, 중창버전, 합창버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공연에선 배우들이 총 여덟 번 정도 노래를 하게 됩니다, 노래는 세 곡이지만. 그런 식으로 반(semi)-뮤지컬적인 성격도 갖게 했고요,

효과음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무대 위에서 라이브로 효과음향을 그림에 입히는 과정이 있는 공연이 있다는 얘기는 저도 얼핏 들은 바가 있었고, 그런 방식을 똑같이 재연하면 재밌겠다, 모든 소리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는 없겠지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옛날영화를 보면 약간 생경하면서도 아주 명징하게 나오는 사운드가 다 후반작업에서 만든 거거든요. 아주 간략하게 되어있지요. 발소리, 문소리, 차소리만. 근데 조금 더 풍부하게 여러 가지 소리를, 가급적이면 다 재연하는 방식으로 온갖 소품들을 활용해서 그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가 되게 하도록 했습니다. 폴리 아티스트로 참여한 그 친구도 배우인데, 폴리 아티스트를 배우로 섭외한 이유도 소리를 만드는 그 자체가 하나의 퍼포먼스고, 무대 위에 올라와 있는 모든 영화의 사운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서 하나의 종합적인 퍼포먼스로 보이길 원했기 때문에 모두 배우들로 캐스팅을 해서 진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하면서 보니까 저희 제작진도 연습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흥분되는 지점이 있었어요. 굉장히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고전영화를 복원하고 다시 재창조하는 그런 맥락에서 하나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생겨났고, 고전영화를 현대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아주 좋은 예, 전범이 될 수 있겠다, 하는 이 자체에도 굉장히 흥분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행히 여러분들이 많이 좋아해주셔서 저희도 아주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홍준
<이국정원>은 아까 자막으로도 보셨다시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첫 공연이 있었고, 그 뒤에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두 번째 공연이 있었고, 작년에 저희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 세 번째로 했는데 이렇게 <이국정원> 팀이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 것은 작년이 처음이었죠?
전계수
네.
김홍준
그래서 작년 프리페스티벌 때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이었고, 또 많은 분들이 앵콜을 요청하셨기 때문에 올해도 간판 프로그램으로 올리게 되었는데, 올해는 조금 더 업그레이드 되어서 두 번 했죠. 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 상의 반응을 봤더니 너무 업그레이드를 잘하셔가지고 배우와 연출자가 바뀐 것으로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이런 불상사까지 일어나고 있는데, 거의 같은 배우들이 하신 거죠?
전계수
근데 작년하고 똑같아요. 작년하고 다른 건 오로지 모니터 사고가 없었다는 것.
김홍준
작년엔 기술적인 문제 때문에 배우들이 공연하는 도중에 객석을 보고 연기하고 노래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죠. 모니터가 갑자기 작동이 안 되는 바람에 배우들이 뒤돌아서서 스크린을 보면서 하셨던 일이 있었는데 관객들은 오히려 그게 원래 설정인 줄 알고 더 좋아하셨어요. 아, 뒷모습만으로 하는 공연도 있구나, 하면서. 그래서 올해는 그런 모든 것들을 저희가 철저하게 대비를 해서 두 번의 공연이 무사히 끝났고, 저도 뿌듯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더 자세한 건 이따 여쭤보도록 하고요,

다음 작품 <청춘쌍곡선> 60주년 공연 ? ‘미미시스터즈의 청춘쌍극장’ 기록 영상을 잠깐 보시겠습니다. 네, 그러면 모은영 프로그래머님 다시 모시겠습니다. 방금 보셨다시피 <청춘쌍곡선>은 1956년 작품이고요, 영화 연구자들 사이엔 많이 알려진 작품이지만 일반 대중들에겐 조금 생소한 영화였는데, 저희가 마침 이번 제1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 이 영화가 60주년이 되었다는 의미도 있고 해서 상영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가지고 뭔가 섹션 ‘충무로 리와인드’에서 새로운 공연형태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던 중에 꾸준히 이런 우리나라의 고전가요라고 해야할까요, 그런 것들에 대한 현대적 해석에 관심을 가져왔던, 미미시스터즈가 저희와 연락이 닿아서 사실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진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기 보다는 원래 있는 레퍼토리들을 간단하게 여흥을 돋는 정도로 하기로 했는데, 일이 조금 더 커져가지고 영화 <청춘쌍곡선> 상영이 끝나면 헌정 오마주 공연 형식으로 30분 동안 바로 여기 중극장 블랙에서 최초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충무로뮤지컬영화제도 한국영상자료원이나 무주산골영화제처럼 우리가 처음 프리미어로 하는 공연을 갖게 되었는데, 일단 기획을 하셨던 모은영 프로그래머님의 말씀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은영
이 ‘미미의 청춘쌍극장’이라고 이름을 지어서 했었던 공연은 방금 김홍준 감독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제1회로 개막하면서 처음으로 같이 만들어서 함께한 공연입니다. 그 이전에 저희가 했던 공연들이 영화와 공연이 함께 진행되는 형식으로 이뤄졌었다면, 그래서 1930년대의 변사 방식을 재현하고, 그 다음에 1950년대의 후시녹음이라는 제작방식을 재현한다는 개념으로 했었다면, 이 작품은 조금 더 대중음악, 대중가요의 형식들을 가져오자,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이 공연은 거의 김홍준 선생님께서 이 기획의 총괄 프로듀서처럼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를 주시면서 진행이 된 건데요, 저희가 그런 기획으로 시작을 하면서 영화가 어떤 악극단이라 하는, 1950년대에 있었던 악극단의 형식들을 조금 재현하보자, 하면서 큰 그림이 잡혀졌어요. 저희가 특별히 청춘쌍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연 이름을 만들었던 이유는, 영화도 보고 뒤에 쑈도 이뤄진다, 라고 하면서 이제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 계속 저희들에게 힘을 실어주시면서 내년에 2회도 하고 3탄도 하겠다, 이런 개념으로 해서 ‘제1탄’이라고 하는 이름도 붙였고요.

그래서 이렇게 진행을 했는데, 아까 말씀하셨다시피 저희가 굉장히 짧은 시간 동안 준비를 했습니다. 준비 기간이 한 2주정도 밖에 안됐었어요. 처음엔 이 노래들, 박시춘 선생님의 메들리들을 해보자, 라고 했으나 공연을 준비하면서 영화 안에 나왔던 노래들이 너무 좋아서 이 영화를 축약하는 형식으로 하면서 다시 새롭게 재해석을 해보자는 의견들이 나오게 되었어요.

아까 보셨던 김시스터즈가 나오는 장면들도 다시 저희가 재연을 하고, 중간에 홍영구 씨가 택배기사 옷을 입고 ‘쌍쌍택배’라 쓰인 상자를 들고 나오시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거는 영화에서 김희갑 선생님이 ‘지게꾼 메들리’를 부르셨던 장면을 재해석 한 거예요. 정말 영화에서 뜬금없이 지게를 든 지게꾼으로 나온 김희갑 선생님이 지나가시면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 아저씨는 왜 맨날 똑같은 노래를 불러요, 이러거든요. 그러면 지게꾼인 김희갑 선생님이 “내가 이 노래도 부를 수 있소, 이 노래도 부를 수 있소” 하면서 박시춘 선생님의 메들리를 노래하시는 장면이 있어요. 김희갑 선생님이 그 전에 악극단에서 굉장한 스타로 활동을 하시다가 영화에 나오시게 되면서 이 선생님의 역량들이 발휘됐던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장면들을 저희가 재연을 하면서 영화에 나온 그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지게꾼이었으면 지금의 택배기사 격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이런 연출을 착안했어요. 현대의 젊은이들 그리고 현대의 예술가들, 배고프지만, 가난하지만 계속해서 예술혼을 가지고 있는 예술가들이 있을 것이다, 하는 식으로 재연을 한 거지요. 그런데 금방 말씀 드린 것처럼 이 기획 역시 이제 시작을 한거고, 거듭해서 더 발전시키고 조금 더 변화시킬 여지는 충분히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홍준
이번 <청춘쌍곡선> 상영에 이어졌던 ‘청춘쌍극장 ? 영화도 보고 쑈도 보고’가 옛날 극장을 연상시킵니다. 사실 옛날에 화신극장에 가면 영화도 보고 쑈도 볼 수 있었는데요, 개그공연도 볼 수 있었죠. 근데 이런 식의 공연을 처음 시도하는거니까, 어느 정도의 반응이 있을까 싶었는데 그날 여기 오셨던 분들은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의도치 않았던 싱얼롱도 이뤄지면서 관객들이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는데요, 이런 것들도 어떻게 보면 우리 영화제의 콘셉트에 맞게, 공연과 영화의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좀 더 시도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빨리 내년 영화제 얘기를 하는 것 같지만, 내년에는 1970년대나 1980년대까지 끌어내려서 관객들로부터 더욱 활발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면 어떨까 해서 영화를 물색 중입니다.

네, 그럼 좋은 말씀 들었고요, 이제 세분 다 모시고 저희가 궁금한 것들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청춘의 십자로>에 대해서 질문을 드리고 싶은데 이번에 두 개의 버전이 있지 않았습니까. 기존의 버전에 비해서 이번에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의 <청춘의 십자로> 공연의 특징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대한 결산이랄까요, 반응 같은 것을 말씀해주시죠.
박관수
저는 일단 <청춘의 십자로> 제작엔 2012년부터 합류했는데요, 아까 모은영 프로그래머님이 말씀하셨지만 2007년부터 <청춘의 십자로> 역사가 있었는데요, 제가 합류했던 2012년에는 구 서울역사에서 3주간 20회 공연을 하는 프로덕션을 저희가 맡아서 하게 되면서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공연 이후에 여러 군데에서 저희를 초청하고자 하는 요청이 있었는데, 이 공연에 참여하는 분들은 변사와 다른 두 분의 배우 그리고 라이브 악단 네 분의 연주자 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공연의 규모가 다른 여느 공연보다 큰 건 아니지만 사실 보통 영화를 상영하는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큰 제작비가 들어가는 셈이거든요. 그래서 많은 요청이 있었음에도 그걸 다 일일이 공연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가지 문제들이 생긴 거죠. 첫 번째는 스태프들과 출연진들의 일정. 이분들이 다 개별 활동을 하고 계신 분들이고, 이벤트성의 공연을 하기 위해서 일정을 비우는 게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제작비. 이 두 가지 문제가 있어서 그 이후에 여러 가지 다른 버전들이 나오기 시작했었는데 저희 청춘의 십자로 풀버전(full version)이 있습니다. 그리고 뒤에 나온 버전에 있던 게 엄밀하게 말하면 네 번째 버전이예요.

풀버전 이후에 어떤 버전이 있었냐면, 변사 한 명이 돌아다니면서 지역에서 하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변사가 배우들이 부르는 노래에 그리고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녹음한 상영본을 가지고 공연을 하는 게 있었어요. 그리고 세 번째 버전은 작년 동경에 필름 아카이브에서 했던 공연인데 그때도 공연 예산문제 때문에 규모를 줄이다가 음악은 녹음을 한 MR이라고 하죠, 그렇게 녹음을 한 걸 상영본에 붙이고, 변사와 배우 두 명이 가서 공연을 하는 방식으로 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와 세 번째 버전은 엄밀하게 보면 저희의 컨셉, 그러니까 과거의 무성영화를 복원해서 재창조를 할 때 라이브 공연으로 재창조를 한다는 측면에서 라이브 음악과 노래가 아닌 셈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 할 공연 준비를 하면서 새로운 버전에 대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에 참여하신 또 한분은 신지아 선생님인데 원래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노래하시고 연주하시던 분입니다. 신지아 선생님과 조희봉 변사가 둘이 하는, 꿍짝꿍짝하는 이런 버전을 하나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마침 이번 영화제를 계기로 해서 그 버전을 만들어 보자는 얘기가 나오면서 두 분의 출연자 포함 세분이 만나서 회의를 시작한 거였어요. 하다보니까, 저희 <청춘의 십자로> 공연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초반에 배우 두 명이 나와서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을 열고, 모두 끝난 다음에 배우 두 분이 노래를 부르면서 공연을 닫게 되는데, 이번에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 선보인 버전에선 열고 닫는 두 노래가 없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아, 이거 심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네 명의 연주자와 두 명의 배우가 하는 여섯 명의 역할을 한 명의 연주자, 신지아 선생님께서 하시는 것에 대한 본인 개인이 받는 부담감도 컸어요. 그래서 저희도 걱정을 많이 했었죠.

이 버전은 3일 전에 여기서 공연을 했었죠, 중극장 블랙에서. 저도 그때 공연을 보는데 오히려 꽉 차 있는 것에서 오는 압도적인 감동이 풀버전에서 있었다면, 무언가 듬성듬성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빈자리에 집중하게 하는, 굉장히 집중도가 높은 공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희도 사실은 리허설을 하면서 전체 분량을 연습실에서 연습해보진 못했거든요, 부분 부분만 잘라서 하고. 어쩌면 여기서 했던 공연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공연장에서 집중해서 하는 거였는데, 정말 이런 보물 같은 공연이 또 하나 뚝딱 나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 공연을 제안해주시고 자리를 만들어주셨던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김홍준
아마 야외상영도 여러 곳에서, 특히 무주에서도 했었고. 여러 번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이번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에서 했던 공연은 어떻게 평가하세요? 어떻게, 본인이 생각하시기에 어땠나요?
박관수
DDP 야외공연은, 저희가 야외공연을 할 때마다 비가 오기도 했어요. 비가 오면 연주자들이, 특별히 바이올린 연주자분들이 악기 소리가 바뀐다고 해서 되게 예민해지시곤 그러거든요. 야외공연을 연주자들이 원치 않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정돈이 되지 않는, 집중이 잘 되지 않는 게 야외공연이라서 그것 때문에 약간 뭐랄까 야외공연보단 그래도 실내에서 좋지 않아? 하는 것들이 되게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DDP에서 공연한다고 했을 때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까 공연하는 공간이 다리 아래 있어서, 야외에 있긴 하지만 실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집중도도 되게 높고. 그래서 공간에 대해선 만족했었요. 또 하나는 예전에 문화역 서울 284에서 공연할 때 거기가 옛날에 양식당으로 쓰이던, 경양식점으로 쓰이던 곳이었는데요.
김홍준
서울역그릴이죠.
박관수
네, 영화에도 그 공간이 나옵니다. 근데 거기서 공연을 하게 됐었는데요, 그 공간이 되게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객석과 무대가 구분이 되지 않은 거였어요. 그런데 어제 공연을 하다보니까 다리 밑 공간이 객석과 무대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공간으로 되더라고요. 그 점에서 되게 옛날 기억도 나고, 마치 옛날에 무성영화 변사공연을 했으면 이런 공간에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이런 생각이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김홍준
저희 부모님이 술회하신 것도 보면 옛날에 지방에서 극장이 없는 곳에선 논바닥에다가 천막을 치고 텐트에서도 영화상영을 하고 그랬다는데, 아마 그런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모은영
그리고 아까 말씀하신 네 가지 버전들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게, 저희의 원칙상으로는 라이브로는 이걸 재현한다고 하지만, 전체적으로 좀 크게 보면 그 당시에 30년대에 이런 영화들이 상영이 되었던 방식과 사실 크게 다르진 않거든요. 그러니까 그 30년대에도 마찬가지로 변사분이 규모에 따라서 어떤, 정말 큰, 제대로 된 극장에서 상영할 때는 정말 풀밴드가 다 들어가서 하기도 하고, 정말 작은 시골에 가게 될 때는 변사 한분이 유성기를 갖고 가서 틀면서 하기도 했었고요. 변사 자체의 역할이 영화의 감정들을 봐가면서,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영화를 빨리 돌리기도 하고 느리게 돌리기도 하면서 했었기 때문에 저희가 이제 약간 나이브한 해석을 하며 끼워 맞추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저희가 하는 모든 것이 1930년대에 했었던 것을 좀 크게, 넓게 생각하면 편하게 변주가 가능한 것 같더라고요.
김홍준
사실 좀 첨언을 하자면, 실제로 1920년대, 1930년대에는 변사가 가장 중요한 흥행의 요소였대요. 누가 변사를 하냐에 따라서 영화가 히트하기도 하고, 변사가 최고의 스타였다고요. 그 변사들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냐면, 단성사 같은 극장에서 변사가 딱 나오면 인력거들이 쭉 서있었대요, 명월관의 기생들이 보낸 인력거가 서 있어가지고 아무 인력거만 타면 그날은 그쪽으로 가는,.. 하여튼 그런 일들이 있을 정도였는데, 이번 공연 같은 경우에도 역시 오랜 공연을 통해서 다져진 팀워크 같은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국정원>에 대해서 여쭤보자면 감독님께서 아까 설명을 해주셨지만, 작년 공연과 비교해서 이번 공연에서 달라진 점이 있었는지, 지금 <청춘의 십자로>처럼 다른 버전, 혹은 규모가 더 큰 버전이나 아니면 더 작은 규모의 버전을 생각하신 게 있는지요?
전계수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작년에 비해서 달라진 게 없고요.
모은영
관객분들이 달라졌죠.
전계수
관객분들이 달라졌고, 배우들도 작년 멤버 그대로고요. 이 배우들이 초연멤버는 아니긴 하지만요. <이국정원>은 아직 <청춘의 십자로>만큼 오랫동안 한 공연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공연 기회는 아직 없었지만, 할 때마다 항상 다르긴 달랐죠. 대사도 제가 배우들한테 새롭게 고쳐서 전달하는 것도 있었고요, 배우들의 애드립도 달랐죠. 특히나, 아,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음향을 만들었던 폴리 아티스트의 아이디어가 하나씩 더 추가가 되었죠. 저희가 영화에 나왔을법한 모든 소리를 무대에서 재현한다는 걸 원칙으로 갖고 있었는데, 사실 초연 때는 도저히 차 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녹음된 소리를 재생했거든요, 녹음된 차 소리를 편집을 해서. 그게 끝까지 마음에 남았었는데, 그 다음 공연 때 아주 간단한 아이들 장난감 같은 소품으로 차 소리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어서 폴리 아티스트도 같이 기뻐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작년에는 기술적인 사고 때문에 집중해서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2회 다 집중해서 봤는데요, 아직도 더 채워야 할 소리들이 있는 것 같고, 어떤 건 빼야할 소리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공연장의 성격, 규모,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것들이 있지요. 저희도 야외에서 한 번 공연을 했었는데, 야외 공연의 분위기는 또 완전히 다르고요. 완성도 면에서만 보면 전문적인 충무아트홀 같은 공연장에서 하는 게 가장 좋지만, 또 어떤 면에선, 특히 분위기 면에선 야외에서 하는 게, 관객 중에 일어나서 춤추시는 분들도 있고, 아이들이 막 뛰어다니고, 그렇게 주변의 산만한 에너지가 또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순간도 있거든요. 그래서 조금 다양한 형태의 공연장이나 환경에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버전은 조금씩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지금까지 저희는 계속 풀버전 공연만 했는데, 무대 위에서 12명의 출연진들이 오르는 그런 경우엔 상당히 규모가 크고 꽉 찬 느낌이 들지만 또 공연장에 따라서, 요청에 따라서는 되게 간결한 형태, 이를테면 <청춘의 십자로>처럼 음악을 MR로 가고 배우들과 폴리 아티스트의 퍼포먼스에 더 집중하게 만드는 공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는 그런 요청이 없었지만 굉장히 여러 형태의 공연이 가능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홍준
아직 <이국정원>의 해외공연은 한 번도 없었죠?
전계수
뭐, ‘입질’은 있는데요, 저희가 좀 덩치가 있는 공연이라서 섣불리 하기가.......
김홍준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일정이나 예산, 규모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렇겠죠. 여담이지만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의 문화를 해외에 소개할 때, 정부 차원에서든 민간 차원에서든, 많은 일들을 하고 있고 지원도 하는데, 제가 영화인이어서도 그렇고 고전영화를 좋아해서 팔이 안으로 굽는 건진 모르지만, <청춘의 십자로>랄지, <이국정원> 같은 작품은 어디에 내어놔도 손색이 없는 그런 예술적인 내용도 갖추고 있고, 또 재미있기도 한 공연입니다. <청춘의 십자로>도 런던올림픽 때 한 프로그램으로 소개됐습니다. 바비칸에서 했었죠, 그때?
모은영
네.
김홍준
우리나라의 공연예술계에 있는 분들이 밟아보고 싶어하는 꿈의 공간인데, 밟아보고 오셨고, 그래서 <이국정원>도 아마 그런 곳에서 공연할 기회가 올 거라고 생각하고요, 이제 시간이 좀 지났는데, 막 시작한 <청춘쌍곡선 ? ‘미미의 청춘쌍극장’>에 대한 계획이랄까, 전망이랄까, 모은영 프로그래머님께서 생각하셨거나, 주변의 반응같은 것들을, 뭐 한 번 전달을 해주시죠.
모은영
일단은 지금까지 했던 공연들이 개인적으로 되게 좋다, 했던 거는 관객분들의 반응도 정말 좋지만 여기에 참여하시는 아티스트 분들이 여기에 대한 애정이 되게 많고, 계속해서 창의적인 면들을 스스로 자극하게 만드는 공연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저희가 이번에 공연이 끝나면서 끝났다, 이게 아니라 바로 뒷풀이에서 ‘다음 공연에서 이걸 어떻게 하고,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많이 했어요.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이게 2주라는 짧은 시간에 이뤄졌지만 그게 가능했었던 건 저희가 2012년정도부터 미미시스터즈와 함께 김시스터즈라고 하는, 아까 잠깐 보셨던 한국 최초의 걸그룹이라고 할 수 있는 이분들에 관해서 헌정공연을 했었고 그때부터 알기 시작한 경험들이 축적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었던 겁니다. 이어서 이걸 더 합쳐서 앞으로의 작업은, 조금 산발되어 있었던 이 미미시스터즈와 함께하는 김시스터즈 프로젝트, 저희가 ‘시스터즈를 찾아서’라고 하는 가칭을 붙여놨는데, 이 시스터즈 프로젝트를 조금 더 발전시키고 ‘청춘쌍극장’이라고 하는 이름 안에 좀 녹여내는 작업을 하려고 계속해서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가장 첫 번째 당면한 계획은 내일 모여서 저희가 공연에 대한 정리와 함께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하는 것이고요, 내년 제2회 충무로뮤지컬영화제에서 저희에게 좋은 기회를 주실 수 있기를 이 자리에서 조금 먼저 말씀드리겠습니다.
김홍준
감사합니다. 저희가 그렇게 부탁을 드려야 하는 거고요. 그러면 이제 전계수 감독님부터 간단하게 마무리 말씀 해주시죠.
전계수
저는 이제 가볍게 공연을 하나 만든다는 생각으로 들어와서 제의를 받아서 시작하게 됐는데, 하면 할수록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영화 하나하나가 문화재급인데 그것들이 그냥 한 번, 어떤 시대의 관객들에게 한번만 보여지고 그 이후로 아무런 생명력을 얻지 못하는 듯해서 너무 안타까운데, 이런 식으로 다시 고전영화가 소개되고 그 시절의 호흡이나 숨결들을 좀 느껴보는 게 굉장히 의미가 있는데, 모든 영화를 또 그렇게 할 수는 없고 이런 식의 플랫폼을 가지고 옛날영화를 소개하기 위한 선별기준이라든가 하는 것도 마련이 되어서 이런 작업이 <청춘의 십자로>, <이국정원>에 이어서 꾸준히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홍준
박수 한 번 부탁.......
박관수
저는 이제 모은영 선생님이 기획하신 몇 작품의 프로덕션을 진행하고 있는 역할인데, 제 본업이 아님에도 이 작업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는 거는, 공연을 하면서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김홍준 예술감독님께서 말씀해주셨던 영화 <만추>엔 저도 프로듀서로 참여했는데요, 2007년, 필름 캔 하나로 시작됐던 그것이 나중에 <만추>의 한 장면으로 창조가 되고, 그에 따른 고민들이 계속 이어져서 관객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공연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변사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가 영화로도 개발이 되고 있고, 그 당시의 여자배우들을 소재로 한 영화와 공연으로도 개발되고 있습니다. 창고에 있었으면 그 이후에 모든 것이 없었을 수도 있는데, 창고에서 나와서 자료원에 찾아 온 필름 캔 때문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1934년도의 영화가 현재 살아서 그 시기의 예술가와 지금의 예술가를 서로 대화하게 하고 소통을 가능케 하는 그런 광경을 목격하는, 경이로운 풍경들을 볼 수 있는 좋은 행운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또, 이번 충무로뮤지컬영화제를 통해서 공연을 할 수 있어서 되게 좋았고요, 다음에도 이런 좋은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김홍준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플랫폼이 있어야만 지속적으로 역량들이 축적되고 기록된다고 생각합니다. <청춘의 십자로> 같은 경우는 이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그게 공연 콘텐츠라기보다는 필름 자체를 지정한 것이고, 제 생각에는 계속 이렇게 공연이 발전한다면 언젠가는 <이국정원 ? 라이브 더빙 쇼>나 <청춘의 십자로 ? 변사공연>도 무형문화재가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들을 꾸준히 대중들에게 소개하고 기록으로 남기고, 또 공연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하는 플랫폼으로서 충무로뮤지컬영화제가, 또 충무로뮤지컬영화제를 든든하게 운영하고 있는 충무아트센터가 계속 그런 역할을 해주실 것을 부탁드리면서 저 또한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것으로서 오늘 포럼을 마치고요, 내년에 또 다양한 ‘충무로 리와인드’ 프로그램과 포럼으로 여러분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